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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 뉴비긴의 교회론과 영국의 선교형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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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5.11 09:29 조회 81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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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6월에 ‘레슬리 뉴비긴의 교회론과 영국의 선교형 교회 – 선교적 교회론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이 나왔습니다. 이 연구는 선교 상황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신학을 탐구하기 위하여 레슬리 뉴비긴의 교회론과 영국 성공회의 교회 개척 보고서 “선교형 교회“를 접맥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 기독교왕국이후와 교회

뉴비긴 신학의 중심 질문은 ‘기독교왕국이후’의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뉴비긴에 의하면 교회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있지 않게 된 이 시대에 할 수 있는 방법은 정면 돌파밖에 없습니다. 기관이나 제도나 힘보다는 회중 하나하나가 사람들에게 복음의 호소력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표현들fresh expressions’이란 교회로부터 멀리 있는 사람들 속에 심어진 회중들 또는 작은 교회들입니다. 새로운 표현들의 다양한 사례들과 신학들과 레슬리 뉴비긴의 선교 경험과 신학들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동일한 모티브, 즉 선교와 복음 증거와 회중 등을 추적하여 보면, 현재의 새로운 선교적 시도들에 도움이 될 하나의 흐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국 기독교의 선교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이 때에 이러한 맥락적 이해, 교회론에 대한 반영이 필요합니다. 이 연구는 이와 같은 한국 교회의 상황을 배경으로, 기독교왕국 해체 후 서구의 선교적 교회에 대한 신학의 자취를 뉴비긴과 ‘선교형 교회’를 연결하여 추구하고자 하였습니다. 

2. 뉴비긴의 선교-세계-교회

뉴비긴 신학의 주제는 크게 선교, 세계, 교회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뉴비긴의 선교 이해는 1960년대 초부터 시작된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 시기에 그가 자각한 것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선교를 교회의 부가물로 보아서는 안되며 교회는 선교의 대행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선교 신학의 출발점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서 발견하여야 합니다”.

 

뉴비긴의 교회관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1962년을 전후로 크게 전환을 이루는데, 기존의 배타적이고 교회 중심적 선교관에서 삼위일체 신앙에 기반한 선교학으로 나아간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뉴비긴의 새로운 교회관은 성경을 읽어가면서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첫째는 구약에서 세속적인 사회의 순례자였던 아브라함의 생애에 대한 묵상이었고, 둘째는 신약에서 예수의 제자 파송에 관한 묵상이었습니다. 그에 의하면 제자들은 성경공부를 하려고 모인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출정을 앞두고 사령관의 연설을 듣는 장병들과 같았습니다. 교회에 모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삶의 현장, 즉 자신들이 일하고 생활하는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드러내도록 파견을 받습니다. ‘각자의 삶 속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회중들’이 세속 사회의 선교를 위한 뉴비긴의 교회상입니다. 이와 같이 뉴비긴은 세속적인 세상에 순례자로 부름받은 공동체, 세속적인 세상 속으로 나아가도록 보냄받은 공동체로서 회중을 교회의 원형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증언하는 회중’ – 이것이 뉴비긴의 교회이며 선교의 핵심입니다.


3. 교회개척과 새로운 표현 

2004년의 보고서 ‘선교형 교회’는 영국 사회의 변화, 영국 성공회의 교회 개척의 개괄, 국내 선교의 신학과 교회론, 새로운 표현들, 방법론들과 구체적 제안들을 담고 있습니다. 보고서 ‘선교형 교회‘는 이보다 선행한 영국 성공회의 보고서 ‘새땅 열기‘와 동일선상에 있습니다. 이 두 보고서의 공헌은 온건한 어조로 다양한 교회개척 시도들을 정당화해 준 데에 있습니다. 교회개척과 새로운 표현은 지역, 이웃, 문화, 네트웍들 가운데 회중을 세우려는 시도입니다. 뉴비긴은 ‘마을 단위의 건강한 회중 공동체’를 세우려고 노력하였는데, 새로운 표현도 이와 동일한 맥락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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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개척이란, 보고서 ‘새땅 열기’에 따르면, ‘목표가 되는 지역, 이웃, 문화, 네트웍 속으로 모체가 될 작은 회중을 이동시켜서, 마치 묘목에서 커다란 나무가 나오듯이, 그 토양에 뿌리 내린 회중을 성장시켜 내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보내는 교회를 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토양 속에 씨앗은 썩어서 없어지고 새로운 나무가 자라는 것입니다. 교회개척은 복음의 토착화 과정이며, 뉴비긴과 보고서 ‘선교형 교회’는 동일한 통찰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표현이란 ‘교회로부터 멀리 있는 사람들을 향한 보다 적극적인 선교’입니다. 넘어야 할 장벽이 많이 있기에 새로운 표현에는 ‘훈련된 개척 팀’이 필수적입니다. 새로운 표현의 파이어니어들은 신앙과 불신앙의 장벽을 넘어 더 멀리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에게 오라’라는 미온적인 방법으로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협소해진 현대의 선교 상황에 절실히 요구되는 선교 실천입니다.


4. 보고서 ‘선교형 교회’와 뉴비긴

보고서 ‘선교형 교회‘는 뉴비긴을 네 번 인용하였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교단의 교회 전통보다 우선합니다. 교회는 네트웍 사이에 생긴 구멍들을 메우고 수많은 공동체들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개척의 원칙은 토착화이며, 그것은 목표 지역, 이웃, 문화, 네트웍의 상황을 무시하고 기존 교회들을 복제해 내는 과정이 아닙니다.

교회론에 관하여 – 교회는 세속 사회 속에 순례하였던 아브라함과 같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호소하고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모으시는 주님을 뵙기 위하여 나아가는 선교적 종말론적 공동체입니다.

교회 개척이 바울 선교의 핵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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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용들을 보았을 때 보고서에 나타난 선교 – 교회 – 교회개척에 관한 주요한 사상들에 뉴비긴이 공헌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뉴비긴은 기독교왕국이 끝나고, 기독교가 사회의 주류에서 비주류로 밀려나고, 그간 교회가 누렸던 특권들이 사라진 상황을, 새로운 거듭남의 계기로 이해하였습니다. 초대 교회의 선교하는 공동체,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사는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회복할 계기로 여겼던 것입니다. 뉴비긴은 건강한 작은 공동체로부터 새로운 선교 상황에 대처하는 원동력을 얻으려 하였습니다. 또한 교회가 내부에만 몰입해 있어서는 안 되며, 진정한 교회의 역할은 그 교회가 일할 자리인 세상을 통하여 계속 재정립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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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형 교회 – 비아


뉴비긴이 제시한 ‘복음을 새롭게 증언하는 회중의 공동체’는 ‘선교형교회’의 교회개척 이론과 실천과 동일선상에 있습니다. 좀 다른 것이 있다면, 보고서에서는 ‘회중’이라는 단어보다도 더 유연성한 개념 – ‘새로운 표현’을 기반으로 전개한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 다양한 교회개척과 ‘새로운 표현’의 경험들이 축적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선교의 본질적이면서도 실천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길은, 레슬리 뉴비긴의 교회론을 함축하는 명제 – ‘세상 속에 증언하는 작은 공동체’에 있습니다. 한 마디로, 새로운 표현은 레슬리 뉴비긴이 씨름하였던 선교적 교회에 대한 신학과 동일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오늘의 맥락에 맞게 표현하는 것이 새로운 표현이라고 한다면, 이 선교적 교회론은 오늘 한국 기독교가 새로워지기 위하여 주력해야할 이론과 실천의 분야 중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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