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오데이 2019년 11월호
기다림
선교와 영성
페이지 정보
본문
우리는 기다린다. 사람을 기다리고 때를 기다리고 하느님을 기다린다.
병원에서 진료와 검사를 기다리듯 수동적이고 지루한 기다림이 있지만 그와는 다른 적극적이고 생동감 있는 기다림이 있다. 연인을 기다릴 때 가슴은 쿵쿵쿵 뛴다. 휴가를 기다리면서 우리는 설렌다. 하느님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간절히 기도한다.
이 기다림을 잊고 우리는 살아간다. 잠시도 기다리지 못하고 무언가를 계속 채우려 한다. 스마트폰을 켜 뉴스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을 한다. 눈을 감지 못한다. 아니 제대로 눈을 뜨고 있지 못한다.
기다림은 채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손에 쥘 수 없을지라도 괜찮다. 내가 정말로 기다리고 있다면, 내가 참으로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면, 기다림 자체가 그 비어 있음으로 우리를 빚어낸다. 그 비어 있음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빔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득 찬, 무엇보다도 충만한 비어 있음이다.
그렇게 비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고, 사람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기다림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태도 중 하나다.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성숙하고 변화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기다릴 줄 알 때 우리의 일상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우리는 즉각적인 답과 만족을 원하지만 그렇게 채워지는 것은 우리에게 참 기쁨을 가져오지 않는다. 삶에 대한 우리의 물음은 바로 답해질 수 없다. 그것은 오랜 기다림을 통해 조금씩 알게 될 뿐이다.
숫자를 채우고 숫자를 늘리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은 크다. 그러나 우리 뜻대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물기를 기다려야 한다. 속이 꽉 찰 때를 기다려야 한다. 하나라도 단 한 사람이라도.
하느님은 숫자로 평가하지 않으실 것이다. 당신이 그 사람을 참으로 기다렸는지, 오래 침묵하시는 하느님을 꾸준히 열렬한 마음으로 기다렸는지를 보실 것이다.
기다림 없이 이룰 수 없다. 기다림 없이 이루어진 것은 금방 날아갈 것이다. 기다림 속에 이루어진 것은 오래 함께 갈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