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 「교회」 - 성공회 예산교회 (마지막회)
지나온 1년, 더 깊이 지역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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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으로 발령받은 지 벌써 1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기쁨과 감사도 있었고, 실망과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교회는 어느덧 102주년이 되었지만 개척교회와 다를 바 없기에 늘 긴장과 조바심으로 보낸 것 같습니다. 개척교회에게 성장이란 단어만큼 달콤한 단어가 또 있을까요? 그러나 지난 1년간 저의 깨달음은 성장보다는 교회의 본질과 존재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작아도 괜찮아요. 이웃이 있잖아요.
지난 2월 16일 예산교회는 재건 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조촐한 1주년 행사를 위해 음식도 준비하고 떡도 마련해서 이웃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특별히 중고 오르간을 한 교우분이 봉헌해주셔서 오르간 축복식을 겸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지난 1년간 성당을 응원해준 분들이 방문하셔서 함께 감사성찬례와 애찬을 나누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교인은 작지만 교우(교회의 벗)는 많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또한 주일보다 주중에 성당을 찾는 분들이 더 많은 교회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작지만 교회를 사랑해주는 이웃들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이웃들은 점점 더 많아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신천지나 극우 개신교의 영향으로 교회라는 단어가 일반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신앙과 이성의 조화로운 균형을 강조하는 성공회 교회의 가치가 더욱 절실한 시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금 더 확장된 소모임
작년에는 2개의 문화 소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마르코의 책방’이라는 독서모임과 ‘신명극장’이라는 영화모임입니다. 책과 영화에는 누구나 부담감 없이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독서모임과 영화상영을 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저자와 영화감독을 초청하여 문화행사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임을 통해서 지역의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교회와 지역 사이의 훌륭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코로나바이러스로 모든 모임이 중단된 상태이지만 올해도 꾸준히 진행될 것입니다.
올해 새로운 모임이 몇 개 더 생겼습니다. 하나는 ‘수런치’라는 식사모임입니다. 수런치는 혼자 점심을 먹는 자영업자나 점심밥을 사먹어야 하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수요일 점심마다 성당에서 함께 밥 먹는 모임입니다. 수요일의 점심 연대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고 ‘수런수런’이란 말이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어지럽게 자꾸 떠들어대는 소리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현재 7명이 수요일마다 모여서 함께 식사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주방장을 제가 하고 있는데 감사하게도 맛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기억과 재생’이라는 흑백사진 모임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왠 필름인가 싶지만 흑백사진이 주는 매력과 묘미가 있습니다. 사진을 찍고 직접 현상과 인화까지 하는 모임인데 벌써 10명의 인원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은 예산군의 오래된 건물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출발했습니다. 일상의 기록을 중심으로 촬영을 하지만 예산군의 오래된 건물과 풍경을 흑백필름으로 담아 성당에서 전시회를 할 예정입니다. 저 역시 낡은 필름카메라를 들고 지역의 구석구석을 담아보려고 합니다.
예산인으로 살아가기
예산에서 1년을 살았고 이제는 예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틈나는 대로 지역을 돌아다니며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지방 소도시이다 보니 지역적 색채가 강한 곳입니다. 드넓은 삽교 평야가 있고 많은 농산물이 생산, 유통되는 곳이었기에 일제 시기에는 은행과 전철이 들어섰고, 1970년대에는 충남방적이 들어서면서 산업적으로도 번성했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고향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고 한편으로는 쇠퇴되어가는 도시에 대한 상실감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목이라는 것이 단지 교회를 잘 관리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의 정서를 잘 이해하고 지역 내 하나의 구성원으로 융합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1월부터 지역신문사에서 원고청탁이 들어와 필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심신부의 예산살이’라는 타이틀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예산이 고향이거나 지역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낯선 이의 시선으로 지역을 바라는 시선 또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성공회를 알리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로, 그리고 지역 속으로
성당 바로 앞에는 금오산이라는 산이 있습니다. 이 곳에 오르면 읍내의 구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산 아래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은 우리 성당부터 멀리 신축 이전한 공주대학교 예산캠퍼스까지 바라다보입니다. 이곳에서 예산교회가 103년의 시간을 버텨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중 아주 작은 일부의 시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곳에 저를 보내신 것은 하느님만의 뜻이 있으실 것입니다. 저는 그 뜻을 다 알지 못하지만 그분의 충실한 도구가 되어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교회인지라 수리할 것도 많고 재정도 늘 부족합니다. 그러나 상상력은 불가능한 현실을 넘어서게 하는 용기를 줍니다.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꿈을 꿀 때 주님께서 모든 것을 채우실 것을 믿습니다. 예산교회는 지역과 함께 존재하는 공동운명체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느님께로 나아가며 또한 지역 속으로 더 깊이 걸어갈 것입니다. 지역교회를 향한 복음의 경계에 선 이러한 발걸음들이 언젠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나 훈훈한 소식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마태오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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